Home 난 왜 불어를
Post
Cancel

난 왜 불어를

마르셀 프루스트의 시간을 찾아서 작품을 보들레르 시들을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품들을 이자벨 랭보 시들을 번역본이 아니라 원작으로 읽고 싶어서

장 뤽 고다르 영화와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자막에 의존하지 않고 보고 싶어서 . 이건 먼 미래의 얘기고

재밌어서 발음이 매력적이라서 나중에 길거나 짧게 불어를 쓰는 지역에 머물 기회가 언제가 올 수도 있는데 그때 불어가 통한다면 여러모로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엄마가 젋었을 때 불어 공부를 하셨다고 해서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 어릴 때 다녀왔던 프랑스 여행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 초등학교 때 내가 같이 지내기를 좋아했던 친구도 프랑스와의 접점이 있어서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고 이어왔던 프랑스어 공부는 나의 예상 범위를 넘어서는 정도로 내게 큰 영향을 줬다 갓 수능을 마친 나는 전공공부가 아닌 다른 일, 취미 생활을 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수험생 마인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었다. 근데 하루 몇 분 정도는,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나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걸로 보이는 것에 시간을 써도 된다고 그걸 스스로에게 가르치고 연습시키는 매개체가, 프랑스어 공부였다. 그것마저도 공부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얼마나 수험생의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길래 그랬을까.

처음엔 너무 어렵고 아무리 반복학습을 해도 익혀지지가 않는 게 답답하기만 했는데 매일 조금씩 몇 년을 지속하면서 그 장벽들은 꾸준히만 하면 언젠가 깨진다는 걸 수 십 번 반복을 거쳐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 수단이기도 했다. 성실함과 꾸준함의 힘을, 조급해 하지 않는 마음, 답답함와 무력감을 다스리고 견디는 마음을 기를 수 있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도 안 좋은 날에도 바빴던 날에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한 레슨이라도 빠짐없이 했다. 내 기분, 몸 상태,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과 너무 많은 변수들 속에서도 이것만큼은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내 안정감으로 느껴진 날도 있었다. 루틴과 안정감 형성의 연관성과 중요성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에 머물 일도, 불어 공부가 현실적으로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원작으로 보고 싶다고 한 작품들을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해 놓고 까맣게 잊을 지도, 앞으로 프랑스어를 정말 한 번도 써 먹을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근데 뭐 그래도 계속 할 것 같다. 계속 하고 있는데 굳이 그만 둘 이유는 없어서인 것 같다. 초반에 실력이 크게크게 늘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안 까먹으면 다행인 정도, 유지하는 정도..

누군가 근데도 왜 하냐고 묻는다면 치매 예방을 위해….?. 😅

프랑스를 동경하거나 가고 싶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정말 쓸 일 없을 수도

또 반대로 지금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좋은 기회가 프랑스어 공부 덕분에 오는 날도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2023.03

가상화 기술(1) - 하이퍼바이저